그림 56옛 기계관

자격루는 어떻게 스스로 시각을 알렸을까

1434년부터 물받이 항아리에서 떠오른 잣대가 구슬을 떨어뜨리면 나무 인형이 종과 북과 징을 쳐서 조선의 시각을 알렸습니다.

자격루는 어떻게 스스로 시각을 알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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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기에서는 3D를 띄울 수 없습니다. 아래 안내 단계를 글로 볼 수 있습니다.

1 / 15 구슬로 이어진 두 장치왼쪽은 물시계, 오른쪽은 시보장치입니다. 보루각기대로 시보장치를 다시 만든 국립고궁박물관 복원품을 따랐습니다. 하루가 실제보다 1,200배 빠르게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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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시각을 알린 시계

1434년 이전에는 궁궐의 시각을 사람이 알렸습니다. 관리가 청동 물받이 통에서 떠오르는 부자를 지켜보다가 잣대 눈금을 읽고 시각을 외쳤는데, 잘못 알리면 무거운 벌을 받았습니다. 『세종실록』의 「보루각기」에는 세종이 바로 그 점을 걱정해 호군 장영실에게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때에 따라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나무 인형을 만들게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스스로 치는 물시계」 자격루입니다. 새 시계는 1434년 7월 1일부터 쓰였습니다.

자격루는 두 기계를 이어 붙인 것입니다. 한쪽은 물시계로, 청동 항아리들이 물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긴 수수호 안의 부자가 눈금 잣대를 밀어 올립니다. 다른 한쪽은 시보장치로, 나무 인형들이 종과 북과 징을 칩니다. 둘을 잇는 것은 작은 구리 구슬과 큰 쇠구슬, 그리고 숟가락처럼 생긴 지렛대입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맨 위 항아리의 물에서 인형이 종을 치는 순간까지를 3D로 따라가고, 시보장치를 잘라 구슬이 다음 구슬에게 일을 넘기는 모습까지 볼 수 있습니다.

원래의 자격루는 온전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작동 모형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설치된 복원품을 따랐는데, 이 복원품은 물시계 부분을 1536년에 만든 남은 항아리에서 본떴고 시보장치는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 페이지의 숫자 가운데 측정값이 아니라 모형에서 정한 값은 그렇다고 밝혀 두었습니다.

여섯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

무대 위쪽 막대에서 여섯 장면을 고릅니다.

  • 작동 모형. 복원품 그대로의 시계 전체입니다. 계단식 나무 다락 위의 파수호 세 개, 용이 감아 오르는 높이 약 2 m의 수수호, 그 위의 방목, 시보장치로 가는 구슬 길, 시보장치 윗층의 인형 셋이 있습니다. 하루가 빨리 흐르고 구슬 하나하나를 계산합니다.
  • 속 기구. 방목과 시보장치를 잘라 2배쯤 키워 그렸습니다. 시, 경, 점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그 신호의 여섯 단계가 설명과 함께 천천히 지나갑니다.
  • 보루각 1434. 실록에 적힌 대로 세 칸 집 안에 놓인 시계입니다. 가운데 칸에 항아리와 수수호가, 동쪽 칸 두 층에 인형이 있습니다.
  • 남은 유물 1536. 1536년 창경궁에 만든 자격루에서 남은 청동 파수호와 수수호 2개입니다.
  • 세계의 물시계. 카르나크의 이집트 유출식 물시계, 크테시비오스의 유입식 물시계, 소송의 천문시계탑, 알자자리의 코끼리 시계, 가라앉는 그릇입니다.
  • 해시계와 맞추기. 1434년 서울 길가 두 곳에 놓인 반구형 해시계 앙부일구와 혼천의입니다. 그림자가 태양시를 보여 주고, 숫자판이 물시계와 비교합니다.

작동 모형의 왼쪽 위 숫자판에는 시계가 두 개 있습니다. 「태양시」는 모형 속 실제 시각이고, 「물시계 시각」은 부자가 실제로 가리키는 시각입니다. 수수호로 들어오는 물이 약해지면 부자가 뒤처지고 두 시각이 벌어지는데, 「어긋남」이 그 차이입니다. 「빨리 감기」는 하루를 최대 14,400배로 돌리고, 1,200배까지는 구슬이 구르는 동안 하루가 기다려 주므로 타종을 놓치지 않습니다. 「구슬 슬로모션」은 구슬과 인형을 8분의 1 속도까지 늦추고, 「구슬 따라가기」를 켜면 카메라가 구슬마다 따라갑니다.

물이 일정하게 흘러야 하는 까닭

이런 물시계는 물의 양으로 시간을 잽니다. 이 모형에서는 1초에 1.47 mL가 수수호로 들어갑니다. 하루면 127 L이고, 지름 30 cm 통에서 부자는 1.8 m 떠오릅니다. 그러면 1시간이 잣대 75 mm, 1분이 1.25 mm입니다. 잣대의 눈금이 시각을 뜻하려면 하루 내내 같은 양이 흘러야 합니다.

문제는 물이 항아리에서 늘 같은 빠르기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항아리가 가득 차 있을 때 더 빨리 나옵니다. 물 표면에서 깊이 h 아래의 작은 구멍으로 나오는 물의 빠르기는 토리첼리 법칙을 따릅니다.

v = √(2gh)

여기서 g는 9.81 m/s²입니다. 흐르는 양은 이 빠르기에 구멍 넓이(와 날카로운 구멍의 유출 계수 약 0.62)를 곱한 것이므로 물 높이의 제곱근에 따라 늘어납니다. 구멍 위 물 높이를 두 배로 해도 유량은 41%쯤만 늘지만, 절반으로 줄이면 29%쯤 줄어듭니다. 항아리 하나에서 바로 물을 받는 시계는 항아리가 빌수록 점점 늦어집니다.

자격루는 이 문제를 세 가지 방법으로 풀었습니다.

  1. 빠져나가는 물이 아니라 들어온 물을 잽니다. 물이 수수호 수면 위의 구멍에서 떨어져 들어오므로 수수호가 얼마나 찼는지는 차오르는 빠르기와 상관이 없습니다. 물을 대는 항아리만 중요합니다.
  2. 항아리를 여러 단 둡니다. 큰 항아리가 중간 항아리를, 중간 항아리가 작은 항아리를, 작은 항아리가 수수호를 채웁니다. 아래 항아리는 빠져나가는 만큼 위에서 채워지므로 수위가 거의 그대로이고, 마지막 항아리는 거의 같은 높이에서 수수호로 물을 보냅니다.
  3. 넘침 구멍을 냅니다. 복원을 이끈 남문현은 작은 파수호 안벽에 구멍을 내 일정한 높이를 넘는 물을 내보냈다고 설명합니다. 위 항아리가 시계에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많이 보내면 작은 파수호는 하루 내내 그 구멍 높이까지 차 있고, 출수구 위 물 높이는 바뀌지 않습니다.

v = √(2gh)로 흐름 계산하기

모형의 항아리 크기는 국가유산청이 밝힌 1536년 실물을 따랐습니다. 큰 파수호는 지름 93.5 cm, 높이 70 cm, 작은 파수호는 지름 46 cm, 높이 40.5 cm입니다. 중간 파수호(지름 70 cm)와 수수호는 모형 값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큰 파수호의 물 깊이는 60 cm, 중간은 45 cm, 작은 것은 30 cm이고, 세 항아리가 모두 1.47 mL/s를 내보내도록 구멍 크기를 맞췄습니다.

이 높이에서 물의 빠르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 큰 파수호, h = 0.60 m: v = √(2 × 9.81 × 0.60) = 3.43 m/s
  • 중간 파수호, h = 0.45 m: v = 2.97 m/s
  • 작은 파수호, h = 0.30 m: v = 2.43 m/s

2.43 m/s로 1.47 mL/s를 보내려면 물이 지나가는 넓이가 0.61 mm²여야 하고, 유출 계수 0.62를 넣으면 구멍 지름은 약 1.12 mm입니다. 가느다란 물줄기 한 가닥입니다. 조작의 「맨 아래 구멍 크기」로 이 구멍을 위아래 20%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항아리를 30초 간격으로 계산해, 10:30에 한 번 채운 뒤 24시간 그대로 두었을 때의 어긋남(늦어진 분)을 구하면 이렇습니다.

설정 6시간 뒤 12시간 뒤 24시간 뒤 24시간 뒤 유량
1단 (큰 파수호만) 6.9 27.8 111.1 84.6%
2단 (큰, 작은) 0.7 5.1 36.0 93.1%
3단 (큰, 중간, 작은) 0.0 0.2 3.2 99.2%
3단과 넘침 구멍 0.0 0.0 0.0 100%

완충 효과는 흐름에 비해 항아리가 크다는 데서 나옵니다. 작은 파수호의 수면 넓이는 0.166 m²입니다. 수위가 1 cm 바뀌려면 1.66 L가 들어오거나 나가야 하는데, 이는 전체 흐름의 18.8분어치입니다. 그래서 위 항아리의 변화는 작은 파수호에 천천히, 그리고 훨씬 줄어들어 전해집니다. 넘침 구멍을 켜면 작은 파수호는 하루에 약 42 L를 흘려버리는데, 이것이 완전히 일정한 수위를 얻는 값입니다.

조작 아래의 「유량 실험」은 네 가지 설정의 하루를 그려 보여 줍니다. 두 가지를 더 해 볼 만합니다. 큰 파수호의 처음 물 높이를 몇 cm로 낮추면 하루 동안 그 흐름이 잦아듭니다. 중간과 작은 파수호가 한동안 시계를 버티게 하지만 결국 뒤처져 하루가 끝날 때 66.6분 늦습니다. 넘침 구멍을 켠 채 맨 아래 구멍을 10% 넓히면 시계는 하루에 약 5시간 빨라집니다. 수위가 고정되어 구멍 크기만으로 흐름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넘침 구멍이 없으면 같은 구멍이라도 손해가 적어 2시간 반쯤인데, 작은 파수호 수위가 내려가며 일부를 메우기 때문입니다.

떠오르는 잣대가 구슬을 떨어뜨리기까지

수수호에 띄운 부자는 거북 모양이었습니다. 남문현이 국가유산진흥원에 쓴 글에 따르면 수수호는 바다를, 거북은 장수를 뜻했고, 수수호에 새긴 용은 하늘의 뜻을 받아 시간을 백성에게 알리는 임금을 나타냈습니다. 거북이 잣대를 받치고, 잣대는 수수호 위에 선 속 빈 네모 나무 기둥 방목 안으로 올라갑니다. 「보루각기」는 방목을 길이 11척 4촌, 나비 6촌, 깊이 4촌에 앞면이 트인 것으로 적었습니다.

방목 안에는 잣대만큼 긴 동판 두 장이 있습니다. 왼쪽 동판에는 12시를 위한 구멍 12개가, 오른쪽 동판에는 밤의 경점을 위한 구멍 25개가 있습니다. 구멍마다 「탄알만 한」 작은 구리 구슬이 걸쇠 뒤에 놓입니다. 잣대가 올라가면 머리에 붙은 길이 4촌 5푼의 가로쇠가 걸쇠를 차례로 밀어 구슬을 풀어 줍니다.

여기서 매끄럽게 이어지는 측정이 낱낱의 신호로 바뀝니다. 부자는 시계 바늘처럼 움직이지만 구슬은 떨어지거나 떨어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구멍의 위치는 시계의 순서표나 마찬가지여서, 구멍을 위로 옮기면 그 신호는 늦게 옵니다. 남문현은 물시계를 아날로그 장치에, 시보장치를 디지털 장치에 견주고, 구슬을 둘 사이의 변환기로 설명합니다.

모형에서는 시 구슬 12개가 왼쪽 동판에, 밤 구슬 25개가 오른쪽 동판에 있습니다. 구슬 높이는 1시간에 75 mm라는 이상적인 상승에서 바로 계산했으므로, 흐름이 완벽한 날에는 모든 구슬이 제시각에 떨어집니다. 항아리 수를 줄이면 부자가 뒤처지고 그 뒤의 모든 신호도 늦어집니다.

구슬과 숟가락이 이어지는 순서

「보루각기」는 이 연쇄를 자세히 적었고, 「속 기구」 장면은 그 설명을 따랐습니다. 배치는 글을 읽고 만든 모형이며 실측 도면이 아닙니다.

  1. 구리통 둘. 방목 아래에서 동쪽 칸까지 넓은 판이 비스듬히 놓이고, 그 위에 구리통 둘이 역시 비스듬히 얹힙니다. 왼쪽 통은 길이 4척 5촌에 시를 위한 구멍 12개, 오른쪽 통은 길이 8척에 경점을 위한 구멍 25개가 바닥에 있고, 구멍마다 걸쇠가 있습니다.
  2. 작은 구슬이 걸쇠를 엽니다. 떨어진 작은 구슬은 제 통으로 굴러들어가 자기 구멍으로 빠지면서 걸쇠를 건드립니다. 걸쇠는 그 구멍을 덮어 다음 작은 구슬이 그 위를 지나가게 합니다.
  3. 쇠구슬. 판의 간막이 넷 위에 「달걀만 한」 큰 쇠구슬이 놓입니다. 왼쪽 12개는 시, 가운데 5개는 경과 매경의 첫 점, 오른쪽 20개는 나머지 점을 맡습니다. 열린 걸쇠가 그중 하나를 풀어 줍니다.
  4. 매달린 통과 숟가락. 동쪽 칸 윗층 아래에 짧은 통이 매달려 있습니다. 통 안에는 한 끝이 굽고 다른 끝이 둥글며 가운데 축이 있는 숟가락 모양 지렛대가 있습니다. 쇠구슬이 둥근 끝에 떨어지면 다른 끝이 통 안에서 올라와 윗층 인형의 팔꿈치를 밀어 올립니다. 시의 경우 이 인형이 종을 칩니다.
  5. 북 다음에 징. 경 구슬은 왼쪽 둥근 기둥 속 숟가락을 움직여 경을 맡은 인형이 북을 치게 합니다. 같은 구슬이 점통으로 굴러들어가 오른쪽 둥근 기둥 속 첫 점의 숟가락을 돌리면 점을 맡은 인형이 징을 칩니다. 구슬은 연잎 아래 곧은 짧은 통에 멈춥니다.
  6. 연잎과 용의 입. 네모진 기둥 둘에 작은 통이 기둥마다 4개씩 비스듬히 꿰여 있습니다. 한 끝은 연잎, 다른 끝은 용의 입 모양으로, 연잎이 구슬을 받으면 용의 입이 아래 연잎으로 뱉습니다. 둘째 점부터의 점 구슬은 이 길을 지나 저마다의 짧은 통에 멈춥니다. 다섯째 점 구슬이 오면 맨 아래 걸쇠를 건드리고, 쇠줄이 빗장을 하나씩 뽑아 기다리던 구슬이 한꺼번에 내려와 다음 경을 준비합니다.
  7. 시패 인형이 올라옵니다. 종을 친 시 구슬은 계속 굴러 길이 6척 6촌인 가로나무의 북쪽 끝에 떨어집니다. 남쪽 끝이 올라가며 길이 2척 2촌인 둥근 나무가 평평한 바퀴 위에 선 12신 가운데 하나의 발을 받쳐 올리고, 그 신은 자기 시패를 든 채 중간 층 위로 올라옵니다. 지난 시의 신은 경첩 달린 동판을 타고 바퀴로 내려옵니다.

실록은 설계 전체에 해당하는 한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모든 기계는 숨어 있어 보이지 않았고, 보이는 것은 관대를 갖춘 나무 인형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작은 구슬이 큰 쇠구슬을 풀어 주는 까닭

탄알만 한 구슬이 떨어지는 힘으로는 청동 종을 울릴 만큼 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계에는 복원 연구에서 에너지 증폭이라고 부르는 단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작은 구슬은 걸쇠만 엽니다. 종을 치는 일은 쇠구슬이 떨어지는 힘이 하고, 물은 그 낙하가 언제 시작될지만 정합니다.

모형의 작은 구슬은 지름 48 mm, 쇠구슬은 84 mm입니다. 둘 다 밀도가 비슷한 통쇠라면 쇠구슬은 (84 ÷ 48)³ ≈ 5.4배 무겁습니다. 약한 신호가 저장된 무게를 풀어 주는 이 방식은 기계식 시계의 탈진기가 추나 태엽의 힘을 한 걸음씩 바늘로 보내는 방식과 같은 생각입니다.

「구슬 슬로모션」을 4분의 1로 하고 안내의 5단계를 누르면 작동 모형에서 한 번의 넘겨주기를 끝까지 볼 수 있습니다. 작은 구슬이 동판을 떠나 방목 안으로 떨어지고, 구슬 길을 따라 시보장치로 굴러가면, 쇠구슬 하나가 받침을 떠납니다.

12시와 100각

조선은 두 가지 시간 제도를 함께 썼고, 자격루는 둘 다 알렸습니다.

첫째는 하루 전체를 열두 동물 이름의 12시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자정 무렵의 자시부터 해시까지이며, 한 시는 지금의 2시간이고 앞쪽 절반인 초와 뒤쪽 절반인 정으로 나뉩니다. 「보루각기」는 한 시를 8각에 초와 정의 나머지를 더해 하루를 100각으로 하고, 1각을 12분으로 나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니 1각은 14.4분이고 한 시는 8과 3분의 1각입니다. 숫자판은 시각을 이 방식으로 씁니다. 「유시 정2각」은 18:28.8부터 18:43.2까지입니다.

시가 바뀔 때마다 인형이 종을 한 번 치고, 새 시의 시패를 든 신이 올라와 다음 시까지 그대로 있습니다. 모형에서는 시가 시작되는 지방 태양시의 홀수 시각에 종이 울립니다. 오시는 11:00, 미시는 13:00입니다. 서울의 지방 태양시는 지금의 한국 시계보다 약 32분 늦은데, 표준시는 동경 135°에 맞춰져 있고 서울은 동경 약 127°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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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점: 혼부터 신까지 25점

둘째 제도는 밤만 셉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해 진 뒤 2.5각(36분)을 혼, 해 뜨기 전 2.5각을 신으로 정하고, 그 사이 밤을 5경으로, 경마다 5점으로 나누어 하룻밤을 25점으로 셌습니다. 겨울밤이 길면 경과 점도 깁니다.

눈금이 고정된 시계로는 길이가 바뀌는 밤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밤에는 살대와 동판을 갈아 썼습니다. 「보루각기」는 예전 밤 살대 21개를 줄여 두 절기에 살대 하나를 쓰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국립중앙과학관에 따르면 세종 때 자격루는 경점 주전 11개를 썼고, 누주통의는 1전을 동지 무렵에, 6전을 춘분·추분 무렵에, 11전을 하지 무렵에 쓰게 했습니다. 시헌력을 들인 뒤 영조는 그 수를 24개로, 정조는 37개로 늘렸습니다.

모형은 태양 길을 고르게 나눈 자리마다 주전 하나를 만들고, 북위 37.57°인 서울의 해 지는 시각과 해 뜨는 시각을 계산했습니다. 세 주전을 보면 이렇습니다.

주전 혼 신 밤 1경 1점
1전(동지) 17:23 06:37 13.24 h 158.8분 31.8분
6전(춘분·추분) 18:40 05:20 10.66 h 127.9분 25.6분
11전(하지) 19:59 04:01 8.04 h 96.5분 19.3분

우리역사넷은 남문현이 정리한 세종 때 1전과 11전의 표를 인용합니다. 1전에서 첫 점은 유시 초1각 4분(17:18 무렵)에, 마지막 점은 묘시 정초각 1.8분(06:02 무렵)에 시작합니다. 모형은 17:23과 06:05로 5분 안에 듭니다. 11전의 기록은 19:45와 03:47쯤이고 모형은 19:59와 03:42로, 첫 점이 14분 늦습니다. 실험 칸의 표에 네 값을 모두 적었습니다. 모형은 현대 공식으로 서울의 해를 계산했고, 1434년의 주전은 수시력의 표로 만들었으니 몇 분의 차이는 당연합니다.

한 주전을 몇 주씩 쓰는 데에도 대가가 있습니다. 실험 칸의 「한 해의 밤」은 24절기마다 실제 1경 길이와 그날 쓰는 주전의 1경 길이를 비교합니다. 절기가 두 주전 사이에 있으면 주전의 밤과 실제 밤이 최대 18.8분 다르고, 밤 끝의 점은 그만큼 어긋납니다.

시보장치는 새 경을 북으로, 경의 수만큼 쳐서 알리고, 점마다 징을 점의 수만큼 칩니다. 하룻밤이면 북 15번, 징 75번입니다. 실험 칸은 지금 끼운 주전으로 그 하나하나를 적어 보여 줍니다.

인정과 파루: 도성이 시계 소리를 듣다

궁궐의 시계는 도성 전체의 시각을 정했습니다. 「보루각기」는 소리를 전하는 방법을 적었습니다. 인형의 종과 북이 울리면 경회루 남문과 월화문, 근정문을 지키는 이가 차례로 자기 종과 북을 치고, 광화문의 큰 종과 북까지 이어졌습니다. 도성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호는 둘이었습니다. 인정에는 성문이 닫히고 통행이 금지되었고, 파루에는 성문이 열렸습니다.

우리역사넷은 그 규칙을 이렇게 전합니다. 인정은 1경 3점에 종을 28번, 파루는 5경 3점에 33번 쳤는데, 파루는 1469년까지 북으로, 그 뒤에는 종으로 쳤습니다. 1414년까지 아침 신호는 5경 첫 점에 있었고, 1423년에는 두 신호를 점이 끝날 때에서 점이 시작될 때로 옮겼습니다. 1469년 규칙에 따르면 밤새 북과 징을 경과 점의 수만큼 쳐서 인정부터 파루까지 북 295번, 징 303번이 울렸습니다. 6전을 끼운 모형에서 인정은 지방 태양시 19:31, 파루는 04:03입니다.

실록에는 새 시계를 쓰기 직전의 논의도 남아 있습니다. 1434년 6월 24일, 임금은 예전 누각이 인정을 늦게, 파루를 이르게 알렸다고 지적하고, 수시력에 꼭 맞는 새 누기가 두 신호를 옮기더라도 그대로 쓸지 물었습니다. 조정은 새 누기를 택했습니다.

1434년의 보루각

「보루각기」는 건물을 몇 줄로 설명합니다. 경복궁에 세 칸짜리 각을 세웠고, 우리역사넷은 그 자리를 경회루 남쪽으로 봅니다. 가운데 칸에는 다락을 두어 위에 파수호를, 아래에 수수호를 놓았습니다. 동쪽 칸에는 두 층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윗층에는 시를 맡아 종을 치는 신, 경을 맡아 북을 치는 신, 점을 맡아 징을 치는 신이 섰고, 중간 층 아래에는 평평한 바퀴가 12신을 싣고 있었습니다. 집의 이름은 시각을 알리는 집이라는 뜻의 보루각이었고, 서운관생이 번갈아 숙직하며 지켰습니다.

「보루각 1434」 장면은 작동 모형을 이런 집 안에 넣었습니다. 돌 기단, 둥근 기둥 8개, 단청 들보, 귀가 들린 기와 지붕입니다. 비례와 색은 모형입니다. 실록은 건물 크기를 적지 않았고 건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1536년에서 남은 것

국가유산청 연혁에 따르면 1505년 자격루는 창덕궁 보루각으로 옮겨졌습니다. 세종의 자격루로부터 100년쯤 뒤에는 창경궁 문정전 동쪽에 새 보루각을 짓고, 자격장 박세룡이 「보루각기」에 따라 새 자격루를 만들어 1536년에 마쳤습니다. 남문현은 흥인지문에도 종루를 두어 시각을 알리려는 것이 그 까닭 가운데 하나였다고 설명합니다.

그 시계에서 남은 것은 물시계 부분뿐으로, 청동 파수호 3개와 수수호 2개입니다. 파수호에는 가정 병신년 6월에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어 1536년 작품임을 알 수 있고, 수수호 뒷면에는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수수호 겉에는 구름 사이의 발톱 다섯 개 달린 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뒤의 내력을 보면 이 시계를 얼마나 오래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1601년과 1652년에 보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의 자격루가 임진왜란 때 사라지자 광해군은 흠경각을 새로 짓고 1536년 자격루를 고쳐 표준시계로 삼았습니다. 이 시계는 창경궁에서, 20년쯤은 덕수궁 근처에서, 1616년부터 다시 창경궁에서, 1866년 무렵부터는 경복궁에서 시각을 알렸고, 1895년 인정과 파루가 없어지면서 그 일을 마쳤습니다. 남문현은 이를 360년쯤으로 셉니다. 1908년부터는 창경궁 제실박물관에서 금루기라는 이름으로 전시했고, 1938년 덕수궁으로 옮겨져 광명문 안에 80년 동안 서 있었습니다. 1979년부터 2008년까지 1만 원권 지폐에 실렸고,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보존처리에 들어가 2020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복원과 새 자료

작동하는 복원품은 건국대학교 남문현 교수가 이끌었습니다. 2008년 국가유산청 소식지는 이 일이 1980년대 초 「보루각기」 번역에서 시작해 건국대학교 한국기술사연구소와 전통 공예 업체, 국립고궁박물관이 함께한 사업으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남문현은 복원품을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에 설치했고, 물시계는 남은 항아리를 본뜨고 시보장치는 「보루각기」대로 만들었으며, 2007년 말부터 조선의 시보를 재현한다고 적었습니다.

새 자료는 계속 나옵니다. 2021년 서울 인사동에서 동판과 구슬방출 부품이 출토되었습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이것을 점을 위한 경점 주전으로 밝혔는데, 동판 하나에 1전이라는 글자가 있고 다른 것들은 3전과 6전에 해당합니다. 「보루각기」와 함께 나온 유물들을 견주어 1536년 보루각의 것으로 보았고, 2022년 떠오르는 주전죽, 방목, 두 종류의 동판, 구슬방출기구로 이루어진 주전 체계 전체의 설계를 발표했습니다.

장영실의 또 다른 물시계인 1438년 옥루도 실록에 나옵니다. 임금의 침전 곁 흠경각에 있었고, 종이로 만든 높이 7척의 산 안에 물로 도는 바퀴를 두었으며, 금으로 만든 해가 하루에 한 번 산을 돌았습니다. 이 전시에는 넣지 않았지만, 같은 장인이 물로 전시 장치를 움직인다는 같은 생각으로 만든 시계입니다.

다른 나라의 물시계

물시계는 자격루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세계의 물시계」 장면은 물시계를 만드는 다섯 가지 방법을 보여 줍니다.

물을 내보내는 방식. 1904년 카르나크에서 나온 물시계는 기원전 1390년 무렵 아멘호테프 3세 때 만들었습니다. 석고 모형을 가진 과학박물관 그룹은 바닥 가까운 작은 구멍으로 물이 새고 옆면이 비스듬해 수위가 고르게 내려가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합니다. 안쪽에는 달마다 하나씩 12줄 눈금이 있는데, 이집트의 시간은 계절마다 길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원본은 지금 카이로의 이집트 문명 박물관에 있습니다. 유출식 물시계는 자격루가 피한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비어 갈수록 흐름이 약해지므로 그릇 모양으로 그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물을 받는 방식. 비트루비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크테시비오스가 닳거나 막히지 않게 금이나 보석에 구멍을 뚫어 물을 들이고, 떠오르는 부자가 톱니 막대와 톱니바퀴를 움직이게 한 물시계를 만들었다고 적었습니다. 비트루비우스는 황도를 따라 흐름이나 눈금을 바꾸어 여름의 긴 시간과 겨울의 짧은 시간을 보여 주는 방법도 설명합니다. 조선은 같은 문제를 밤 주전으로 풀었습니다.

그릇 여러 개를 잇는 방식. 일본 국립천문대는 중국에서 들어온 계단식 물시계 누각(로코쿠)을 설명합니다. 여러 상자가 물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마지막 상자에 화살이 뜹니다. 일본서기는 660년 나카노오에 황자가 일본 최초의 물시계를 만들었고, 671년 덴지 천황이 되어 새 받침에 놓고 종과 북으로 시각을 알렸다고 적었습니다. 일본은 6월 10일을 시간의 날로 지킵니다.

물을 동력으로 쓰는 방식. 1088년 중국에 세운 소송의 천문시계탑은 물로 바퀴를 돌렸습니다. 과학박물관 그룹은 20세기에 그 글을 다시 찾아 읽은 학자들이 이 바퀴가 일정한 간격으로 힘을 조금씩 내보내는 탈진기였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설명합니다. 1206년 기술자 알자자리는 디야르바키르에서 기계 장치 책을 마쳤습니다. 도널드 힐의 번역에 따르면 그의 코끼리 시계에서는 코끼리 속 물통에서 구멍 난 그릇이 반 시간마다 가라앉으며 서기 인형을 돌리고, 다 가라앉으면 매 부리에서 구슬이 떨어지고 지붕 위 새가 울며 돕니다. 자격루처럼 떨어지는 구슬로 소리와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가장 단순한 방식. 가라앉는 그릇은 작은 구멍이 난 그릇을 물에 띄운 것입니다. 과학박물관 그룹은 750~850년 무렵의 색슨 청동 그릇 복제품(1시간쯤에 가라앉음)과, 구멍에 금을 끼운 스리랑카 구리 그릇(24분쯤에 가라앉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로 시계를 맞추기

물시계는 조금씩 어긋나므로 하늘에 맞춰 보아야 합니다. 「보루각기」는 새 시계가 관측 기구인 간의와 견주어 털끝만큼도 틀리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석 달 뒤 실록은 처음으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앙부일구를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시각을 볼 수 있게 했다고 전합니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향한 반구형 청동 그릇입니다. 영침 끝이 그릇 중심에 있고 영침은 천구의 북극을 가리키므로, 그 끝의 그림자가 선 위에 떨어집니다. 모형의 그릇에는 시각선과, 낮 길이가 같은 두 절기마다 하나씩인 곡선 13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해시계와 맞추기」 장면에서는 시각과 날짜에 따라 해가 움직이고 주 조명이 해를 따라가며, 숫자판에 해시계 시각과 물시계 시각이 나란히 나옵니다. 그릇의 선은 주전과 같은 태양 공식으로 서울의 위도에 맞춰 계산했습니다.

모형에서 단순하게 만든 것

  • 중간 파수호, 수수호(안지름 30 cm, 높이 2 m), 구멍 크기, 넘침 배율(위 항아리가 시계 유량의 1.35배를 보냄)은 모형 값입니다.
  • 모형은 한 부자로 밤 전체를 재도록 지방 태양시 10:30에 수수호를 바꿉니다. 원래 수수호 두 개를 번갈아 썼지만, 몇 시에 바꿨는지는 이 전시가 알지 못합니다.
  • 밤 주전은 누주통의의 표가 아니라 태양 길을 고르게 나눈 자리로 만들었고, 해 지는 시각과 뜨는 시각은 현대 공식으로 계산했습니다.
  • 작동 모형에서 구슬은 구슬 길 하나와 레일 하나를 따라갑니다. 「속 기구」 장면은 「보루각기」에 더 가깝지만 위치와 크기는 여전히 글을 읽고 정한 것입니다.
  • 인형과 옷, 보루각 건물, 세계의 물시계는 단순하게 그렸습니다. 모양과 색은 어떤 유물을 본뜬 것이 아닙니다.
  • 항아리는 하루를 가득 찬 채 시작하고 다시 채우지 않습니다. 맨 위 항아리를 다시 채우거나 넘침 구멍을 쓴 관리라면 시계를 해에 더 가깝게 맞췄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자격루는 누가 만들었나요?

실록은 세종의 명을 받아 인형과 그 기계를 만든 사람으로 당시 호군이던 장영실을 적었습니다. 같은 기록은 장영실이 동래현 관노 출신으로 성품이 정교해 늘 궐내의 공장 일을 맡았다고 전합니다. 시계는 1434년 7월 1일부터 쓰였습니다.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나요?

1536년의 청동 항아리들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있고, 2005년에 설치된 작동 복원품도 그곳에 있습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2021년 출토품을 바탕으로 주전 체계의 새 설계를 발표했습니다.

파수호를 왜 여러 개 두었나요?

구멍 위 물이 깊을수록 물이 빨리 나오므로(v = √(2gh)) 항아리 하나는 빌수록 물을 덜 보냅니다. 이 모형에서 항아리 하나면 하루에 111분, 둘이면 36분, 셋이면 3.2분 늦습니다. 마지막 항아리의 수위를 고정하는 넘침 구멍을 두면 오차가 없어집니다.

종, 북, 징은 각각 무엇을 알렸나요?

종은 밤낮의 12시를 하나하나 알렸습니다. 북은 밤 5경이 시작될 때마다 경의 수만큼 울렸고, 징은 밤의 점마다 점의 수만큼 울렸습니다.

한 점은 몇 분이었나요?

계절에 따라 달랐습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한 이 모형에서 1점은 동지 무렵 31.8분, 춘분·추분 무렵 25.6분, 하지 무렵 19.3분입니다. 밤은 해 진 뒤 2.5각인 혼부터 해 뜨기 전 2.5각인 신까지로 셌습니다.

낮과 밤을 왜 다르게 셌나요?

우리역사넷은 해가 뜨고 지는 데 맞춘 시간 제도가 햇빛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에 편했고, 특히 밤은 다스려야 할 시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인정에 성문이 닫히고 파루에 열렸으며, 순찰은 경에 따라 바뀌었습니다. 유럽도 기계 시계가 퍼진 14세기까지 밤에는 길이가 바뀌는 시간을 썼습니다.

각은 무엇인가요?

하루의 100분의 1로, 14.4분입니다. 「보루각기」는 하루를 12시로 나누고 시마다 8각에 나머지를 더해 모두 100각으로 하며, 1각을 12분으로 나눴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하루를 96각으로 바꾸었습니다.

부자는 얼마나 빨리 떠오르나요?

이 모형에서는 하루에 1.8 m, 1시간에 75 mm, 1분에 1.25 mm입니다. 그러려면 지름 30 cm 수수호에 1초에 1.47 mL가 고르게 들어와야 합니다.

작은 구슬이 왜 큰 구슬을 풀어 주나요?

탄알만 한 구슬은 방망이를 휘두를 만큼 세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작은 구슬은 걸쇠만 열고, 달걀만 한 쇠구슬이 일을 합니다. 복원 연구는 이것을 에너지 증폭이라고 부릅니다.

복원 자격루는 원래 자격루와 똑같나요?

아닙니다. 물시계는 1536년 항아리를 본떴지만 시보장치는 남은 부품이 없어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2021년에 나온 부품으로 주전 체계의 새 설계도 이미 나왔습니다. 이 전시는 할 수 있는 한 기록을 따르고, 스스로 정한 것은 모형 값으로 표시했습니다.

그 시대에 인형이 움직이는 물시계는 자격루뿐이었나요?

아닙니다. 알자자리는 1206년 인형이 움직이는 물시계를 여럿 적었고, 일본의 671년 물시계도 이미 종과 북으로 시각을 알렸습니다. 자격루가 두드러지는 점은 그 신호가 도성 전체의 낮과 밤에 묶여 있었다는 것, 그리고 1536년의 후속 시계가 360년 동안 쓰였다는 것입니다.

궁궐 밖 사람들은 시각을 어떻게 알았나요?

소리로 알았습니다. 궁궐 문의 종과 북이 인형의 신호를 광화문까지 이어 받았고, 도성의 종루가 인정과 파루를 쳤습니다. 낮에는 길가의 앙부일구가 지나가는 누구에게나 시각을 보여 주었습니다.

용어

  • 자격루: 「스스로 치는 물시계」라는 뜻입니다.
  • 보루각: 자격루를 둔 집입니다.
  • 파수호: 물을 대는 항아리입니다.
  • 수수호: 물을 받는 긴 통입니다.
  • 방목: 수수호 위에 서서 잣대가 올라가는 네모 기둥입니다.
  • 주전: 떠오르는 잣대와 동판입니다. 밤 주전은 계절에 따라 갈아 끼웠습니다.
  • 각: 하루의 100분의 1, 14.4분입니다.
  • 시: 하루를 12로 나눈 시간으로, 앞쪽 절반 초와 뒤쪽 절반 정이 있습니다.
  • 경과 점: 밤의 다섯 경과 경마다의 다섯 점입니다.
  • 혼과 신: 해 진 뒤 2.5각과 해 뜨기 전 2.5각입니다.
  • 인정과 파루: 저녁에 성문을 닫는 신호와 아침에 성문을 여는 신호입니다.
  • 앙부일구: 반구형 해시계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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